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누구나 꿈꾸는 일생일대의 로맨스다. 이들의 로맨스에 잠제되어 있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로맨스에서 낭만적인 유혹을 느낀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열정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들의 로맨스는 낭만적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할 만큼 예외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일생일대의 로맨스의 시대가 아니라 패스트 로맨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로맨스가 쉽게 성사되기 어려웠기에 한번 성사된 로맨스의 약속이 무게를 지녔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분명 로맨스는 쉬워졌다. 대학 진학 때까지는 이성교제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스스로 하곤 했던 예전의 세대는 이미 중년의 학부모들이 되었다.
그들의 자녀세대에서는 이성교제와 품행 방정 사이에 함수 관계가 없다. 로맨스는 패스트 패션의 경향과 유사해졌다.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은 로맨스에 돌입할 수가 없다. 이른바 ‘밀당’ 즉 밀고 당기기는 여전히 있지만 수 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던 과거의 ‘밀당’은 이제 전설이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밀고 당기기마저 패스트해진다. 로맨스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일생에 몇 번 올 수 없는 생애의 유일무이한 기회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누구나 쉽게 그리고 일찍부터 로맨스의 관계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고등학생들도 길에서 손을 잡고 버스 안에서 애정 표현을 할 정도로 로맨스가 쉬워졌다.
만난지 100일 되는 날이 기념일이 될 정도로 로맨스의 주기도 짧아졌다. 로맨스가 빨라지고,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로맨스의 빈도가 그만큼 빈번해지면 로맨스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혼전 로맨스가 한두 번에 불과했던 중년 및 그 이전 세대와 달리, 최근의 로맨스 빈도는 일 년에 몇 차례로 바뀌었다. 심지어 ‘원나이트 스탠드’라는 과거 세대가 꿈도 꾸지 못했던 하룻밤만의 로맨스도 가능한 시대이다.
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로맨스가 빈번해지면, 로맨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에 덩달아 높아진 기대치는 로맨스를 더욱 감정의 접착제가 아니라 휘발성 감정으로 만들어버린다.로맨스의 휘발성이 강해지면, 로맨스는 오히려 개인의 근심덩어리가 된다.
일생의 한두 번의 로맨스를 겪었던 세대는 로맨스가 부재하는 순간을 자연스런 인간적 상황으로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로맨스가 빈번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불과 몇 달에 불과한 로맨스의 결핍만으로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금씩 마음에 더욱 쉽게 맺은 로맨스는 또 결혼이라는 무거운 결심을 이끌어내기에는 더욱 휘발성을 띠게 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의 상황에 몰입하고 커플이 되고 이벤트를 하고 기념일을 챙기고 애정을 표현하지만 ,결혼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